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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다 국제개발

작은것이 아름답다. (슈마허, 1973)

슈마허는 1970년대 초반에 이미 성장에 대한 경계, 지역화, 중간기술(현재는 적정기술)을 부르짖었다. 문순홍의 저 <생태학의 담론>에서 <작은것이 아름답다>에는 여러 개념들이 뒤섞여 있다고 했는데 과연 백과사전처럼 여러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그 맥락을 한번에 기술해 내기도 쉽지 않다. 증거를 제시하고 논리적으로 주장을 증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기 보다는 저자의 신념과 예견을 접할 수 있는 책이다.
현대 사회의 주요 주제는 '경제' 와 '과학' 이다. 이 두 바퀴로 현대 사회는 지속적으로 달려나가고 있고, 눈부신 발전(이라 일컬어지는)을 이루어냈다. 슈마허는 과학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교육 문제를 끄집어 내고 있는데 이는 한국인인 우리가 꼭 귀기울여 들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40년전 이야기 임에도 흥미로우며. 무엇보다도 살아있다. 2013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들이다. 

경제학자 슈마허는 경제학의 문제점에 대해 먼저 기술한다. 슈마허는 가격이 판단의 기준이 되는 경제학에서는 실질적 가치가 고려되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석유 10달러 어치와, 미용서비스 10달러가 경제논리 하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같은 가치로 '거래' 되지만 이것이 과연 같은 가치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경제학에서는 재생불가능한 자원이라 할 지라도, 소비와 생산의 접점에서 가치기준이 매겨진다. 그리고 그것이 '공정거래' 라고 말한다. 나도 그동안 경제학을 공부하며 천연자원의 값어치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시장논리에 의하여 공정하게 매겨진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천연자원은 고갈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필요성에 의해서만 가치가 매겨지고 거래된다. 어떤 재생불가능한 천연자원이 값싸게 거래된다고 치자. 하지만 50년뒤.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 그 물질로 인류를 살릴 수 있는 신약이라든지, 새 에너지 원을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안타깝게도 이미 대부분 소진해 버린 뒤라면? 인간이 매기는 가격이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우리는 가능성을 알지 못한다. 소비하면 지구에서 사라지는 자원이라 할지라도 시장논리에 의해 소비한다. 그린이코노미 역시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 우리는 환경에 가격을 매기고, 그것을 거래할 수 있는가? 그 가격은 정당하고 공정한가? 경제학의 수식에 의한 가격은 기준을 제시할 수 있고, 판단의 근거로 이용될 수도 있지만 그것만이 절대성을 가질때 발생하는 '위험' 은 누가 책임질 수 있는가.

또한 현대는 경제와 함께 과학을 신봉하는 시대이다. 과학 자체는 가치 중립적이다. 우리의 생활은 과학기술의 진보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렇기에 발생하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과학으로 해결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오늘날 많은 문제들이 과학기술의 진보로부터 발생하고 있지만, 과학 자체는 중립성을 가지기때문에 누구도 과학이 문제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인간은 더 탐구하고 더 발전시키고 더 무언가를 발명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것은 아름다운 행위로 찬양받는다. 그린이코노미도 현재 발생하고 있는 환경 문제를 과학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 그것이 정책과 이론의 주요 골자이지 않았는가. 슈마허는 과학을 활용하는 가치관이 증요하고, 기술에 앞선 가치관과 관념의 교육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그는 인간의 얼굴을 한 기술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한다. 과학은 인류를 파멸시킬수도 있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OECD중 소득대비 교육비 1위, 교육열 1위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떤 가치를 가진 교육을 하고 있는가? 현대판 카스트라고 명명되고 있는 우리의 교육은 출세를 위한 도구 이며, 그것이 교육의 본질이 되어가고 있다. 과학은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 교육을 많이 받은 자들에 의하여 쓰임새가 결정된다. 철학 없는 기술, 경제논리의 경쟁사회. 이것은 어린이가 자동차를 운전하는 도로와 비슷하지 않는가.

슈마허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중간기술과 지역화, 그리고 '규모의 경제' 이다. 규모의 경제는 기존 경제학 이론과 달리 대규모를 지양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생산단위의 규모가 커질수록, 노동과 소유가 분리되어 착취의 형태를 띄게 된다는 것. 본래 사유재산권은 자연스러우며 생산적이고 공정한 것인데, 이것이 유지되려면 적정한 규모가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도되고, 많이 언급되고 있는 '협동조합' 이 이에 대한 성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슈마허는 첫 페이지에서 전제한다. "세상 사가 기대만큼 풀리지 않는 것은 틀림없이 인간의 사악함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마음 속에 얼마나 많은 사악함이 깃들여있든지 간에, 그 사악함을 몰아내고 누구나 제대로 행동할 수 있도록 완벽한 정치체계를 건설해야 한다." 라고. 40년전이나 지금이나 학자들의 성찰과 목소리는 '지역화' '자력화' '거버넌스의 중요성' 등에 대하여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개발국가와 개발도상국의 국제개발협력은 위의 몇가지 키워드를 무시한 채 진행되어 온 프로젝트가 부지기수다. 전형적인 개발모델인 우리나라도 위의 성찰 없이 성장만을 지향해 왔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정치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만들어진 정치체계는 지속가능한가 라는 생각을 해본다.

참고) 적정기술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148&contents_id=7805&leaf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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